길게 안 쓰고 최대한 사실과 사실관계만 쓰겠습니다.
이 글을 특히 20, 30 젊은 분들께 바칩니다.
1905년 러시아에서 붉은 혁명이 일어납니다.
(알려진 역사와 다르게)
1905년 러시아 붉은 혁명은 사실 '유대 공산주의 혁명'이었습니다.
참여한 사람의 대부분 유대인이었죠. (역사학계에서는 80% 이상으로 추산합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유대인이 추방당한 겁니다.
이때 혁명에 참여한 사람 중 대표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독일제 공산주의 독일 공산주의 연맹 스파르타쿠스의 창립 멤버이자
빨갱이의 대모 로자 룩셈부르크였습니다.
물론 유대인이죠.
이 1905년 러시아 혁명에 돈을 댄 사람이 바로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 Federal Reserve) 창립자 중 -
야곱 쉬프였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창립을 주도한 사람이죠.
야곱 쉬프는 로스차일드의 대출 중개인이었습니다.
야곱 쉬프가 돈을 댔다는 건 로스차일드가 돈을 댔다는 겁니다.
1904년 러-일 전쟁에 돈을 댄 사람도 바로

야곱 쉬프입니다.
물론 유대인이죠.
로스차일드가 일본에 돈을 댔고, 그래서 러시아가 전쟁에 진 겁니다.
로스차일드는 아시다시피 대표적인 유대 금융가죠.
그렇게 러시아가 지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이루어진 겁니다.
로스차일드가가 러시아에서 유전(바쿠 유전)을 개발하다가 철수하고,
1917년 러시아의 그 유명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 제국이 무너집니다.
(알려진 역사와 다르게)
레닌에게 돈을 댄 금육가가 바로

야곱 쉬프입니다.
레닌은 유대인이죠.
트로츠키에게 돈을 댄 금융가도 역시

야곱 쉬프와 존 D. 록펠러입니다.
록펠러 역시 유대계입니다.

트로츠키는 미국과 매우 친했습니다.
미국 뉴저지에 있는 록펠러의 호화 주택에 머물기도 했죠.
록펠러는 트로츠키에게 호화생활을 누리게 해줬습니다.
전용 운전기사까지 제공했을 정도죠.
(가장 폭력적인 볼셰비키 혁명론 주창자인 트로츠키가 미국으로 입국하는데 우드로 윌슨의 입김이 없었다고 생각하신다면 매우 순진하신 겁니다.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론'이라는 건 유명합니다.)
이 볼셰비키 혁명은 사실 유대 공산주의 혁명이었고,
유대 금융가가 돈을 댔고,
그렇게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겁니다.
미국이 없었으면 볼셰비키 혁명도 없었습니다.
미국이 공산주의 혁명에 돈을 댄 겁니다.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뒤,
레닌은 아주 이상한 법령을 발표합니다.
'유대인 차별 금지법'
그리고 소련 공산당 지도부에 유대인들을 고위직으로 앉힙니다.
(볼셰비키든 맨셰비키든 그냥 유대인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 1921 소련 공산당 지도부 5인 -
- (왼쪽부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당시 소련 공산당 지도부에는 5명의 핵심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레닌은 이미 총 맞고 침상에서 빌빌대고 있었고,
저 5명 중 핵심 권력자가 바로 트로츠키와 스탈린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탈린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소련 공산당 지도부 상당수가 유대인이었습니다.
트로츠키는 로마노프 왕가의 금을 스위스로 빼돌리고 있었죠.
스탈린은 트로츠키가 유대 시온주의 공산국가를 만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판단했씁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대대적으로 추방했고, 죽였습니다.
바로 피의 숙청입니다.
그리고 스탈린이 즉시 착수한 일은
트로츠키가 빼돌린 러시아 금을 찾아왔고, 러시아 정교회를 부활시켰습니다.
스탈린은 레닌이나 트로츠키와 다르게 러시아 정교 민족주의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스탈린이 교회를 많이 지어줬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이 아직도 스탈린을 좋아하는 겁니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 유럽(유대 금융가)과 스탈린의 대립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바로 로스차일드, 록펠러와 스탈린의 대립이죠.
미국 금융가는 공산주의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스탈린을 싫어한 거죠.
왜
러시아에서 유대 금융가와 석유 사업에서 유대 금융가를 축출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스탈린은 루즈벨트가 1943년부터 2년 넘게 제안해 오던 브레튼 우즈 체제 편입을 거부했습니다.
1945년에 브레튼 우즈 체제가 설립되지만 스탈린은 끝까지 달러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1946년에 윈스턴 처칠의 그 유명한 철의 장막 선언이 이루어지고,
냉전이 시작됩니다.
사실 냉전이 아닙니다. 미국과 영국이 연합해서 소련을 먼저 칠 생각이었죠.
이 부문은 생략합니다.
Operation Unthinkable (생각지도 못할 작전) 을 찾아보세요.
윈스턴 처칠이 영국 합참에 지시해서 소련을 칠 계획을 짜라고 한 게 바로 이 생각지도 못할 작전입니다.
물론 1949년에 소련이 핵폭탄을 개발했고, 이 작전은 물건너갔죠.
영구적일것 같은 냉전이 시작된 겁니다.
동아시아로 와 봅시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
모택동.

모택동에게 누가 돈을 댔을까
바로 중국에 있던 예일대 분과대학을 통해서 모택동에게 돈이 들어갔습니다.
이 자금이 젊은 모택동이 공산주의 혁명가로서 중국에서 명성을 얻는 데 결정적인 밑바탕이 됐습니다.
미국이 없었으면 모택동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두 역사를 감추려고 하는 거죠. 중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 1974년 뉴욕 타임즈에 실린 데이비드 록펠러의 모택동 헌사 -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 3년 뒤, 록펠러가 뉴욕 타임즈에 실은 모택동 헌사 기고문입니다. 록펠러가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최소 약 2,0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을 극찬한 것입니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존 D. 록펠러의 손자이자 존 D. 록펠러 주니어의 아들입니다.
국공내전.

- 오웬 래티모어와 모택동 -
오웬 래티모어는 장개적의 정치고문이었지만,
모택동도 지원했습니다.

- 태평양 관계 연구소 -
오웬 래티모어는 태평양관계연구소 소속이었고,
미국 국무부의 중국통이라 불린 놈입니다.
이 태평양관계연구소를 지원한 금융가가 바로
존 D. 록펠러 3세입니다.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받는 기관이라는 겁니다.
이때 오웬 래티모어를 통해 중국 전략을 보고받은 사람이 바로
조지 마샬, 그리고 딘 애치슨입니다.
그 유명하고 빌어먹을 애치슨 라인의 그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죠.
그리고 트루먼 행정부에 이르러 미국은 장개석에게 자금 지원을 중단합니다.
그렇게 모택동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받은 오웬 래티모어는
한반도 전략도 국무부에 제안하는데
"남한은 미국의 이익과 정책에 있어 자산이 아니라 부채다. 오늘날 남한의 대한민국 정부가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인가는 의문시되며, 따라서 미국은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
- 1949년, 오웬 래티모어가 미국 국무부에 보고한 한반도 전략 -
그리고 오웬 래티모어가 구체적으로 미국 국무부에 제시한 한반도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국을 무너트리는 것이지만,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1억 5천만 달러의 이별 보조금을 제안합니다."
- 오웬 래티모어 -

- 1944년, 미국 외교잡지 Foreign Affairs 에 실린 한반도 분할 전략 -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오웬 래티모어의 이 전략은
미국 국무부에 즉시 채택되어 미국 외교잡지 Foreign Affairs 에 실리게 됩니다.
여기서 미국 외교 위원회 CFR - Council of Foreign Relations이라는 기관이 언급됩니다.
(저 캡쳐 사진에는 잘못 적혀 있습니다. CFR입니다.)

CFR은 JP 모건, 데이비드 록펠러 등이 후원하는 미국에서 가장 막강한
미국 국무부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략연구소입니다.
그리고 Foreign Affairs는 CFR에서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오웬 래티모어가 미국 국무부에 제시한 '이별 보조금'은
미국이 한국에 주기로 한 1억 5천만 달러의 보조금은
이 중 집행된 건 천만 달러가 전부고,
그 천만 달러 중 한국에 들어온 건 단 200달러입니다.
200달러.
그 200달러마저 미국 배 주유비였죠.
천만 달러 대부분이 어딘가로 사라졌고(당연히 횡령을 의심할 수밖에 없죠),
미국 의회는 이를 덮었습니다.
그렇게 애치슨 라인이 선포(declaration)되고 미군은 한반도에서 빠졌습니다.
이 사실을 의회에서 폭로한 사람이 바로

조셉 매카시입니다.
그 유명한 매카시즘의 그 매카시 맞습니다.
매카시는 한반도를 전쟁으로 끌어들이려는 미국 국무부의 계획을 눈치챘습니다.
단지 왜 를 몰랐던 거죠.
"한국 전쟁은 NATO에 "O"를 붙였다."
- 딘 애치슨 -
냉전 블록의 마무리가 바로 한국 전쟁입니다.
NATO가 한국 전쟁을 통해 완성된 겁니다.
그럼 매카시즘은 뭐였나
매카시즘이란 말 자체가 오웬 래티모어가 조셉 매카시를 비꼬는 용어로 사용한 것에서 시작된 겁니다.
애초에 미국이 공산주의를 지원했는데 공산주의자를 잡겠다고 의회를 뒤집어 놨으니까요.
그래서 매카시가 정치계에서 퇴출된 겁니다.
매카시는 정계에서 퇴출되고, 술독에 빠져살다 죽습니다.
이게 미국과 영국이 만든 냉전이라는 거대한 거짓말의 시작입니다.
미국, 특히 금융가는 공산주의를 좋아했습니다.
단시 스탈린을 싫어한 거죠.
스탈린이 유대인을 추방했고, 유대 금융가를 추방했고,
브레튼 우즈 체제, 즉 달러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는 금융가가 중앙은행만 장악하면
국민들을 죽을 때까지 은행의 노예로 부려먹을 수 있는 너무나 효율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역사를 잘 돌이켜 보세요.
공산주의에 '민족'은 없습니다.
오직 체제만 있을 뿐이죠.
그래서 공산주의가 '변증법적 존재론'이라는 개소리를 떠들면서
'해체론적 역사관'을 주장하는 겁니다.
영구적 갈등론이죠.
해체론적 역사관이 뭐냐
역사에서 민족을 지우고, 계급 갈등 구조로만 역사를 해석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를 써서
형이상학적 존재론 자체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좌파니 우파니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친미니 반미니 어쩌고 저쩌고...
모두 속고 있는 겁니다.
잠깐 냉전 시기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미국 금융가는 공산주의를 좋아했습니다.
단지 스탈린을 싫어한 거죠.
스탈린이 유대인, 유대 금융가를 추방했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달러를 거부했죠.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죠.
바로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미국에는 '네오콘 - Neo Con - Neo Conservative (신보수주의)'라는 세력이 있습니다.

- PNAC -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
바로 이들입니다.
이름들을 보시면 얼마나 거대한 권력집단인지 아실 겁니다.
어마어마하죠.
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전현직 대통령(힐러리 클린턴은 빌 클린턴의 영부인), 좌파, 우파 모두 네오콘입니다.
이 네오콘의 대부라고 불리는 사람이 바로


어빙 크리스톨입니다.
문제는 이 어빙 크리스톨이


트로츠키파, 즉 유대 공산주의자였습니다.
미국 네오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은 공산주의자였습니다.
미국 사회주의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트로츠키의 '영구적 혁명론'을 이어받은 자라는 겁니다.
어빙 크리스톨은 스탈린이 소련에서 유대인을 추방하고 죽이자
완전한 반스탈린주의, 반러시아주의자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게 네오콘의 시작입니다.
유대 공산주의자가 트로츠키의 '영구적 패권론'을 실현하기 위해
'러시아를 무너트리는 전략'을 세우기 시작한 게 네오콘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 PNAC의 공동 설립자

빌 크리스톨과 로버트 케이건.
빌 크리스톨이 바로 어빙 크리스톨의 아들입니다.
모두 유대인이죠.
바로 이들이 아직까지도 활동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것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채.
PNAC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로버트 케이건의 동생은

ISW - 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 의 설립자

킴벌리 케이건의 오빠입니다.
이 ISW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연구소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의 최신 전황을 친미 국가 언론사에 뿌리는 기관입니다.
전쟁계획을 짜주는 연구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로버트 케이건의 아내

빅토리아 눌랜드는 전 미국 국무부 동유럽 차관보로서

- 빅토리아 눌랜드와 마이단 네오 나치 삼총사 -
(왼쪽부터 - 올레흐 탸니보크, 비탈리 클리츠코, 아르세니 야체뉴크)
2014년에 우크라이나에서 마이단 쿠데타를 계획하고 지휘한 네오콘의 실세입니다.
사진의 맨 오른쪽 아르세니 야체뉴크는 2014년 마이단 쿠데타로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된 뒤에
빅토리아 눌랜드에 의해 임시 총리로 임명된 악질적인 네오 나치 입니다.
네오콘은 전 세계에서 극우 시민단체를 지원합니다.

- 올레흐 탸니보크와 존 매케인 -
냉전과 함께 시작된 네오콘의 계보가 이렇게 이어지는 겁니다.
우크라이나는 짧게 정리하겠습니다.
노인들은 답 없습니다.
젊은 분들이라도 이 글을 많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글은 1000페이지 분량의 20세기 역사의 10페이지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미국이란 나라, 그리고 20세기 역사에 대해
조금의 의심은 생길 겁니다.
역사의 연결고리는 '이념'에 있는 게 아닙니다.
역사의 그림자 속엔 '달러'가 있습니다.
달러 패권.
에이브라함 링컨은 그린백으로 연방 정부의 화폐 발권력을 가져오려고 했고,
존 F. 케네디는 은본위를 도입해 연방 정부의 화폐 발권력을 가져오려고 했고,
리비아의 카다피는 아프리카 통합 화폐를 만들어 화폐 발권력을 가져오려고 했고(실제로 가져왔고),
사담 후세인은 패트로 달러를 거부했습니다.
이정도만 언급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정보를 TV나 유튜브에서 볼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아서들 판단하세요.
단지 지금 청년 여러분이 겪는 이런 인플레이션과 좌파니 우파니 하는 애들 장난같은 갈등은
진짜 역사를 뒤져야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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