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소규모 학교에서 근무하는 초등남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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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민원으로 인한 이번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네요... 전문직, 공무원, 근로자 등등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고생하시는데, 유독 공무원, 교사에 대한 오펜/디펜 글들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며 공감이 갈 때도,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많았습니다. 물론 이 글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만들것임을 알기에 글 쓰는 게 조심스럽지만, 저희 직종에 대한 많은 얘기가 오가고 있으니 저도 소규모 학교에 대한 얘기로 한 번 보태보고자 합니다. (교사 내에서도 초등/중고등 갈라치기하고, 남교사/여교사로 갈라치기 하더니 이제는 학급 규모가지고도 갈라치기하네ㅋㅋ 라는 생각이 드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악성민원에 대해서는 저도 당장 뉴스 기사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진짜 쓰레기같은 일들도 여러 번 겪어봤지만, 이는 워낙 요즘 이슈가 많이 되고 있으니 차치하겠습니다.
저는 근무년수 10년 동안 지방 소도시 소규모 학교에서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한 학년에 한 반씩 있는 학교고, 초등학교에는 6개 학년이 있으니 보통 6학급 학교라고들 칭하지요. 교육부, 시도교육청, 교육지원청 모두 큰 학교급을 기준으로 모든 정책이 펼쳐집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 같이 중소도시 이하 농산어촌 지역 등은 인구절벽을 온 몸으로 체감합니다. 심지어는 진짜 깊은 산골의 어느 학교가 폐교위기에 처하면 이를 막고자 총동창회에서 장인의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와 1~2명 입학시켜 겨우겨우 한 해 한 해 버텨나가는 건, 소규모학급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이라면 모두가 아시는 상황일 겁니다. 여튼 이러한 규모의 학교 수는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특별시/광역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6학급 학교로 바뀌겠지요. 심지어는 담임 한 명이 2개 학년 학생을 모아 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복식학급을 가진 학교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문제는, 학교의 규모에 상관없이 60학급(한 학년에 10개 반)이나 6학급(한 학년에 1개 반)이나 기본적으로 쳐내야 할 업무의 종류와 양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이 말인 즉슨, 수치로만 따지면 6학급 교사들은 큰 학교 10명이 해야 할 업무량을 혼자서 담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진짜 10배는 아닙니다. 큰 학교에 비해 애들 숫자도 다소 작을 거고, 큰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이런저런 사업들을 작은 학교는 인력 문제로 신청조차 하지 못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듯 '기본적으로' 해내야 할 업무에는 큰 차이가 없어서, 작은 학교급 교사 모두가 큰 학교 교사 3~4명분 이상은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애들이랑 놀아주다가 16:30 퇴근에, 일 년 3달 방학 있으면서 그 정도 연봉이면 뭘 더 바라냐 맞습니다. 큰 학교는 그렇습니다. 저도 2년이지만 큰 학교에 근무해보니... 천국입니다. 사실 애들 하교하고나서 메신저만 켜놓고 그냥 집에 가버려도 모릅니다. 걸리면 근무지 이탈로 징계받겠지만요. 겨우 교재 연구(수업 준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그거 외에는 진짜 할 일이 없습니다. 평생을 수업으로 먹고 사는데, 기본만 한다고 했을 때 6개 학년 수업 내용 싹 다 모아봐야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니 짬 차서 비교적 편하다는 3~4학년만 몇 년씩 맡아서 하시는 50대 아줌마, 할머니 선생님들은 진짜 개욕먹어도 쌉니다. 학교 와서 하는 게 없어요. 애들 학교 와 있는 동안에는 그냥 수업 대충하다가 하교하고 난 2~3시부터는 차 마시다 집에 갑니다. 그러고는 칼퇴근, 방학 꼬박꼬박 챙기며 그 연봉 받아가면 같은 교사가 봐도 진짜 진절머리 납니다. 혈세가 줄줄 새는 장면이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니까요. (한편으로 교육대학원 가시고 수업 연구에 매진하는 분들은 진짜 나름의 사명을 갖고 일하시는 훌륭한 선생님들입니다. 그거 안해도 누구도 뭐라 안하는데, 돈 더 주는 거 아닌데, 진짜로 애들을 위해서 하시는 거라서요.)
반면, 작은 학교는 안 그렇습니다. 은행처럼 애들 집에 가고나면 그 때부터 샷다 내리고 업무 시작입니다. 6학급 학교는 보통 담임 6명+체육전담(3~6학년 체육 수업만 맡아서 함) 형태가 많습니다. 이 7명이서 교무부장, 연구부장, 생활·안전·학교폭력, 과학·정보·영재, 방과후·돌봄·늘봄, 영어·체육, 도서·독서교육·도서관 운영 등등으로 업무를 나눠서 합니다. 큰 학교는 저걸 수십 명이서 나눠서 하는 거구요. 그러다보니 7명 전원이 공문을 한 명당 1년에 100~300건 씩은 씁니다. 그 공문이란 게 하나 작성하는데 짧게는 1~2시간에서 길게는 2주씩 걸리기도 합니다. 수업 준비는 고사하고 오죽하면 교사들끼리도 업무 없을 때 애들 수업한다는 얘기도 있으니, 주객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된 거죠. 그렇다고 소규모 지역 학부모들도 다 알만큼은 알아서 민원 들어오는 수준도 대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저 업무들을 반드시 담임이 해야 하느냐 아닙니다. 행정실 인력을 충원하든, 다른 인력을 더 뽑든 해서 행정업무를 맡아서 해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전에 어떤 정보업무담당 교사분이 올린 글에서 통합배선단자함 뜯는다는 얘기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거 행정실에서 정보담당 직원이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학교도서관 책 정리는 사서도우미를 뽑아서 시키든가 하고 그 시간에 교사는 학생들 일기장에 멘트라도 하나 더 달아줘야지요... 그 시간에 수학익힘책 매겨가며 얘는 뭐가 부족한지, 어떤 생각으로 문제를 풀고있는지 분석해서 다음 수업에 반영하는 게 아이들에게 백 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학부모님들은 우리 담임이 아이들 수업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간에 저런 거 하고 있을 거란 걸 상상이나 할까요
큰 학교에는 이런 시스템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습니다. 유지보수업체에서 매일같이 학교 방문하여 담당 기사가 학교 전체 PC/네트워크 관리해주고, 사서교사 배치돼서 도서관 잘 돌아가고, 방과후학교 코디가 따로 있어서 다 관리해줍니다. 반면 작은 학교에는 유지보수업체가 있기는 한데 오가는 길 멀어서 차비도 안나오니 PC가 불량이라도 뭐 하나 부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위 7명 중에 컴퓨터 좀 만질 줄 아는 놈이 수업하다 말고서도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고쳐주기 바쁩니다. 사서교사는 어림도 없고, 방과후학교 코디 채용공고 내도 면접보러 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여튼, 저렇게 인력충원이라도 되면 위에서 말한 월급루팡들이 더더욱 늘어나겠지요 그렇지만, 교사가 하는 일이 없다고 행정업무를 시킬 게 아니라(큰 학교 기준), 교사가 수업 준비와 학생 관리에 매진하게 하고, 그렇지 않을 시 패널티를 주는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실있는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쏟는 교사의 노력과 시간이 우리 학생들의 발전에 고스란히 전달될 거라고 강력하게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 방학 너무 좋습니다. 업무 땜에 출근하는 기간 빼더라도 최소 여름방학 2주, 겨울방학 한 달은 쉬니까 좋은 건 맞는데, 이걸로 교직 내내 평생 욕 얻어먹을 생각하니 그냥 저는 욕 안먹고 출근하는 게 낫다 싶습니다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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